🌱 무력감? 전 이렇게 떨쳐냈습니다

2023. 9. 7.

무력감? 전 이렇게 떨쳐냈습니다

[149호] 기후대응의 반려방송 <기후만민공동회 오늘의 기후> (10시~12시 FM 99.9 OBS 라디오)

오늘의 기후

무력감? 전 이렇게 떨쳐냈습니다

요즘 무력감을 호소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기후대응 측면에서나 아니면 민주주의 측면에서나.
저도 그랬습니다. 더하여 프로그램 두 시간 확장이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며칠간 멍한 표정으로 고개숙인 남자가 되었었죠.

그런데 훌훌 털어버리고 다시 전투력을 회복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요.

지난 월요일 방송대상 시상식이 열리는 KBS 공개홀에 갔을 때입니다. 다큐멘터리 분야 작품상을 받은 '어른 김장하'의 담당피디분(경남 MBC)이 수상소감을 말하는 데 깜짝 놀랐습니다. 스마트하게 차려입은 여성 피디분(위 사진)이었는데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요즘 무력감을 호소하는 분들이 많으세요. 우리가 힘들게 쌓아올린 민주주의 탑이 여기저기서 와르르 무너지는 걸 보면서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그런데 여러분, 김장하 선생님은 저희한테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옛날에 사돈집에 초대받아 밥을 드시던 어른이 그 집 밥에 섞인 돌을 씹으셨대요. 와드득, 소리에 깜짝 놀란 사돈이 너무 미안해하시면서 돌이 많아서 어쩌냐고 하시더래요. 그러자 돌을 씹은 어른이 이렇게 말하셨대요. 그래도 쌀이 훨씬 많다고..."

비록 돌이 섞여들어갔지만 그럼에도 쌀이 훨씬 더 많다....많은 뜻을 품고 있는 말씀이었습니다. 끄덕끄덕, 그런가보다 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인 화요일, 이 날 방송에 출연한 시민들의 에너지를 본격적으로 느끼기 시작합니다.

화요일의 기후학교 출연자 이인형 선생님, 이 분은 전 세계가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에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는 이 마당에 오히려 재생에너지 목표를 후퇴시키고 있는 정부 정책에 대해 '경제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며 통탄의 한숨을 쉬고 계신 분 중 한 분입니다. 그런데 이 날은 하나의 엑셀 계산표를 들고 스튜디오로 나오셨어요. 우리나라처럼 좁은 땅에 태양광 설치할 곳이 어디있느냐는 속설을 반박하기 위해 본인이 직접 우리나라 모든 도로 위에 독일 아우토반처럼 지붕 태양광을 설치할 경우 여기서 나오는 재생전력량이 어느 정도 될 지 하나하나 조건을 대입하여 계산하신거죠. 고속도로, 국도, 지방도, 1차선과 4차선, 갓길과 자투리땅까지, 이런 식으로 경우의 수를 따져보고 대입하여 풀어봤더니 최소한의 면적만으로도 충분히 2030년까지 기업 경쟁력에 충분한 RE100 전기를 생산할 수 있더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합니다. 이어서 공장 지붕 위 태양광을 또 다른 산식으로 계산하시고요, 이거봐라, 내가 직접 계산했다, 이렇게 말이죠. 옳고 그름을 떠나 그 정성과 노력이 어느 정도였을까,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누가 용역비를 주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들었죠. '우리 시민들은 만만한 존재가 아니다.'

그 다음 순서로 출연한 수원의 환경활동가 홍은화 선생님은 평범한 주부이자 엄마였던 자신이 어떻게 해서 '걸어다니는 식물도감'이 되고 그 유명한 수원청개구리와 수원 황구지천 수달 발견을 하게 되었는지 이야기해주셨습니다. 비결은 생명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었습니다.

"잡초라는 이름으로 뽑히고 버려지는 풀들에게도 이름이 있을 것 같아서 그들의 이름을 부르고 싶어서 식물도감을 하나하나 찾다보니 어느새 전문가들도 저에게 야생화나 풀 이름을 물어보는 '걸어다는 식물도감'이라는 별명을 갖게됐어요."

그런 그녀 역시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누가 용역을 준 것도 아닌데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인 수원청개구리가 도시화된 수원에 살고 있는지 찾아다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첫 발견을 한 순간을 이렇게 회상합니다.

"청개구리는 크게 두 종류예요. 그냥 청개구리와 수원청개구리. 처음에 수원에서 발견된 청개구리가 아예 일반 명사화되어 전국에서 서식하죠. 그런데 정작 수원에서는 찾아보기 힘든거예요. 그런 수원청개구리 울음소리를 찾아 여기저기 찾아다녔어요. 환청까지 들릴만큼...마침내 수원의 어느 논둑길에서 수원청개구리 소리를 확인했을때....가슴이 두근거렸죠."

그녀는 지금 수달의 생존을 확인한 수원 황구지천 보호에 팔걷어부치고 뛰고 있습니다. 수원에 수달이 살고 있다니...더 놀라운 것은 그런 멸종위기종 보호를 위해 뛰고 있는 시민들이 노력이 꾸준히 이어져왔다는 점입니다. '우리 시민들은 만만한 존재가 아니다.' (2)

다음날인 수요일에는 멀리 양주에서 출연하러 오신 분이 계십니다. 전직 IT업체 대표였던 이종수 경기도 탄소중립도민추진단 양주 대표님, 이 분은 양주 생태환경교육의 중심인 그린리더 과정에 대한 지원이 뚝 끊겼어도 자비를 포함해 십시일반으로 모아가면서 청소년 환경교육을 꾸준히 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면서 저희 프로그램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며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격려의 말씀을 놓고 다시 양주로 가셨습니다. 다음날인 목요일에는 멀리 파주에서 젊은 출연자가 왔습니다. 그는 이러저러한 코너를 하고 싶다며 코너기획안을 저희에게 보내오신 이기관 파주햇빛발전협동조합 기술이사였습니다. 그가 기획한 코너는 놀랍게도 기후변화 관련 SF 미래뉴스였습니다. 기후변화로 인해 먼 미래에 일어날법한 뉴스들을 읽고 그 근거와 대응책을 찾아보자는 신박한 기획이었습니다.

"내일의 날씨를 알면 사람들이 대비를 하잖아요? 비 온다고 하면 우산이나 장화를 준비하듯, 내일의 기후뉴스를 알면 사람들이 대비를 하겠죠. 어떤 분들은 기회를 찾기도 하고..."

그렇게 준비한 기후SF극장 '내일의 기후' 첫 순서는 소고기 폭식현장 단속 뉴스였습니다. 마치 마약처럼 먼 미래에는 온실가스 배출 요소인 육류소비를 억제하기 위해 일정 배급량을 초과하는 소고기 폭식사례에 대해 합동단속반이 불시 점검을 나서고 여기서 걸린 고위층들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다는 SF였습니다. '우리 시민들은 만만한 존재가 아니다.' (3)

이런 시민들을 월, 화, 수, 목, 금 매일 만나고 있는데 그것도 인터뷰나 문자, 댓글 등 다양한 형태로, 무력감에 고개 숙일 틈이 어디있겠습니까? 전쟁으로 부서진 폐허 속에서도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듯, 독재와 권위주의를 뚫고 민주주의 꽃을 피워냈듯, 우리 시민들은 결국 기후대응을 정의롭게 펼쳐나가는 나라를 만들것이다. 왜냐, 만만한 사람들이 아니니까. 즐거운 주말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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