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키스탄이 잠겼다, 비가 멈추지 않는다

탄소배출 1% 미만 가난한 나라의 비극

2022. 8. 31.

[오늘의 기후] 파키스탄이 잠겼다, 비가 멈추지 않는다, 석 달 째

[62호] 오늘은 파키스탄 하나로 갑니다.

오늘의 기후

파키스탄이 잠겼다, 석 달 째 비가 멈추지 않는다

가장 큰 홍수 피해를 입은 파키스탄 남서부의 '발루치스탄'(Balochistan)주는 비가 오는 곳이 아닙니다. 서쪽으로는 이란 고원, 북쪽으로는 아프카니스탄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건조한 사막 고원 지대입니다. 낙타를 타고 다니던 유목민들의 땅입니다. 여름에는 45도를 그냥 넘기는 뜨거운 곳입니다.

그런 이 곳이 지금 물에 잠겼습니다. 어린이 73명을 포함해 250명이 사망했습니다. 6만1,718채의 주택이 피해를 입고 가축 14만5,936마리가 떠내려갔으며 24억4800만평(200만 에이커)의 농지가 망가졌습니다. 석 달 째 멈추지 않는 큰 비 때문입니다.

파키스탄에는 원래 6월 우기부터 몬순 비가 내립니다. 그런데 올해는 내려도 너무 내렸습니다. 남서부의 발루치스탄주는 30년 평균치보다 5배 이상 많은 비가 내렸고, 남동부의 신드주에는 9배 가량 많은 비가 계속 내렸습니다. '스테로이드 몬순' (monsoon on steroids)이라고 합니다. 인간에 의한 기후변화가 원인임을 지적한 안토니우 구테흐스 UN 사무총장의 말입니다.

"파키스탄 사람들은 '스테로이드 몬순'에 직면해있습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수준의 비와 홍수가 끊임없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UN 사무총장, CNN 보도, 2022년 8월30일)

파키스탄 4개 주 전역이 6월 중순부터 계속 내린 폭우로 홍수 피해를 입었습니다. 파키스탄 국가재난관리청(NDMA)의 공식통계에 따르면 8월28일 기준 1,061명이 사망하고 1,575명이 다쳤습니다. 수많은 도로가 끊기고 정전피해까지 홍수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전 인구의 15%인 3천3백만 명으로 추정되며 수 백 만 명의 이재민들이 긴급 피난처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어린이들이 특히 걱정입니다. 이미 사망자 1천여명 중 어린이가 300명 이상이었고, 유니세프에 따르면 3백만 명의 어린이를 포함해 6백만 명 이상이 인도적 지원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집과 공중보건시설, 수도가 파괴됐고 질병 위험도 높기 때문입니다.

“비가 잦아들 때쯤이면 파키스탄의 4분의 1 혹은 3분의 1이 물에 잠겨 있을 것”
(셰리 레흐만 파키스탄 기후변화부 장관의 터키 언론 인터뷰)

<사진 : 유니세프 누리집, 2022년 8월30일>

파키스탄의 탄소배출은 1% 미만인데...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파키스탄 정부는 이번 홍수를 “심각한 기후재앙”으로 정의했습니다. UN 사무총장 역시 파키스탄에 대한 긴급 지원을 시행하며 기후변화를 지목했습니다.

"점점 더 극단적인 기상 현상을 목격하면서도, 세계적으로 더 많은 온실가스가 배출되고 있음에도 기후대응이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입니다. 위험합니다. 이제 기후변화로 인한 파멸의 순간으로 향하고 있는 몽유병같은 걸음을 멈출 때입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UN 사무총장, CNN 보도, 2022년 8월30일)

이 대목에서 '기후정의'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산업혁명 이후 탄소 배출을 통해 부자가 된 사람들과 나라들은 탄소 배출로 인한 기후변화에도 피해를 덜 보지만, 탄소 배출을 미미하게 한 가난한 나라 사람들은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로 모든 걸 빼앗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CNN>에 따르면 파키스탄은 세계 탄소발자국의 1% 미만을 생산하고 있음에도 2000년부터 2019년까지 기후 변화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국가 순위에서 8위를 차지했습니다. (2021년 비영리 단체 <저먼워치>(Germanwatch)가 발표한 글로벌 기후 위험 지수 기준) 파키스탄과 같은 남아시아사람들이 기후 위기 영향으로 사망할 가능성이 15배 더 높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부자들의 탄소배출로 인한 피해를 가난한 사람들이 고스란히 입는 꼴.

"이것이 기후위기입니다. 대부분의 부유한 나라들이 만들어온 기후가 위기로 작용하고 있기에, 전 세계는 지금 파키스탄이 필요한 것을 지원하는 일에 응답해야 합니다."

(압둘라 파딜 유니세프 파키스탄 대변인의 CNN 인터뷰, 2022년 8월30일)

이번 파키스탄 재난에 대해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전 세계가 지원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도적 지원을 넘어선 피해보상 차원의 보다 근본적인 지원을 부자나라들이 할 수 있을까? 여기서 우리는 또 다른 현실을 마주치게 됩니다. 지난 6월 독일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회의...개발도상국들이 겪고 있는 기후위기 피해보상을 위한 자금마련에 선진국들이 적극적으로 나서라는 요구에 대해 미국과 유럽연합은 외면했습니다. 회의는 교착상태에 빠졌습니다.

"독일 본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회의(본 기후회의)가 기후피해에 대한 보상 문제를 두고 신랄한 논쟁만 벌이다 성과없이 끝났다. BBC와 르몽드에 따르면 개발도상국들은 COP27에서 개도국이 겪고 있는 기후피해 보상을 위한 자금 마련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유럽연합(EU)과 미국은 반대했다." (경향신문, 2022년 6월19일)

똥 싼 놈이 치워라, 기후변화 대응 초창기부터 아프리카를 비롯한 개발도상국들이 선진국들에 대해 줄기차게 요구해온 기후 보상 문제입니다. 그러나 강대국들은 자국의 기후 대응에는 적극적이면서 기후 보상 자금 마련에는 소극적인 이중 잣대를 보여왔습니다. 전 세계 정상들이 한 자리에 모여 기후대응을 논의하는 27번째 유엔기후변화당사국총회, COP27이 오는 11월 이집트 샤름엘셰이크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과연 이 자리에서 지금 파키스탄이 직면한 문제를 비롯해 수많은 기후위기 피해에 대한 보상 문제는 어떻게 논의될까요?

분명한 것은 그 누구도 기후 위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며, 우리의 기후 피해에 대해 우리가 준비되어 있지 못하면 그 누구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겁니다. 신흥 탄소배출국 반열에 올라선 우리도 부지런히 탄소 배출량을 줄여나가는 한편 예측불가 기후위기에 대한 정의로운 대응을 착실히 이뤄나가야겠습니다. UN 사무총장의 한 마디가 귓전에 맴돕니다.

"오늘은 파키스탄입니다. 내일은 당신의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참고 자료>

Sophia Saifi, Kathleen Magramo, Mayumi Maruyama and Angela Dewan, 'Pakistan floods caused by 'monsoon on steroids,' says UN chief in urgent appeal' (CNN, 2022년 8월30일)

Sophia Saifi, Bonnie Turner and Tara John, 'Over 900 killed by Pakistan monsoon rains and floods, including 326 children' (CNN, 2022년 8월24일)

'Devastating floods in Pakistan' (UNICEF 누리집, 2022년 8월30일)

Peter Duru, 'Houses submerged, property destroyed as flood wreaks havoc in Makurdi' (Vanguard, 2022년 8월29일)

'Balochistan flood death toll reaches 250' (Geo News, 2022년 8월30일)

김승환, '‘기후재앙’ 파키스탄, 홍수 사망자 1000명 넘어… “국토 3분의 1 잠길 것” (세계일보, 2022년 8월29일)

박은하, '개도국 피해보상 회피에 본 기후회의 논쟁만 하다 끝나' (경향신문, 2022년 6월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