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한번 가보고 싶은 여행지의 재난

남프랑스 / 데스밸리 / 옐로스톤

2022. 6. 23.

[오늘의 기후] 꼭 한번 가보고 싶은 여행지의 재난

[41호]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

오늘의 기후

데스밸리, 잇따른 사망사건

우리나라 관광객들도 그랜드캐니언이나 라스베이거스를 갈 때 꼭 한 번 가보는 세상에서 가장 더운 골짜기, 이 죽음의 계곡에 자동차 한 대가 서있었다. 자동차가 주차된 곳은 데스밸리에서도 일출과 일몰을 볼 수 있어 최고의 명소로 꼽히는 자브리스키 포인트(Zabriskie Point). 자동차의 주인은 관광객이 분명했다.

사흘 뒤인 6월 11일, 차가 그대로 서있었다. 며칠째 차만 있고 사람은 없었다. 어떻게 된 걸까?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자동차를 수색했다. 몇 가지 단서를 찾을 수 있었다. 차 주인은 데이비드 켈러허(Kelleher), 67세. 자동차의 상태는 '가스 부족'. 그리고 당시 데스밸리의 온도는 56도. 즉 숨을 쉬기도 힘들 만큼 극단적인 고온에서 차의 기름마저 다 떨어지자, 67세의 차 주인은 휘발유를 구하기 위해 어딘가로 걸어나간 것이다. 실제로 국립공원관리청 기록에 따르면 차 주인이 지나가던 순찰대에게 '기름이 부족하다'라고 말했던 진술이 나오기도 했다. 경찰은 차 주인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너무 더운 날씨 속에 수색은 빠르게 진행되지 못했다.

사흘 뒤인 6월 14일 오후 2시경, 그의 시신이 발견됐다. 차에서 약 4킬로미터 떨어진 190번 고속도로 근처 메스키트 (Mesquite) 나무 아래였다. 폭염 속에서 그늘을 찾던 그가 사막에서 가장 흔한 이 관목 아래 몸을 숨진 채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사건 이후 국립공원 관리자들은 방문객들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극한의 날씨가 이어지고 있는 만큼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절대로 차를 떠나지 말고 도움을 기다려야 한다고.

이런 사고는 첫 번째가 아니다. 지난 5월 한 남성의 차량이 데스밸리 안에 있는 에미그랑 캠프 그라운드((Emigrant Campground)에서 발견됐다. 경찰은 수색 작업에 나섰지만 아직 그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다. 수색 작업도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 6월 1일에는 69세 남성이 캘리포니아 파나민트 밸리(Panamint Valley)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아직 7월이 오지 않았지만 현재 캘리포니아와 네바다, 애리조나 주는 극한의 폭염과 가뭄이 이어지고 있다. 휴양지로 유명한 캘리포니아 팜스프링스와 애리조나 피닉스는 45.5도, 백 년 만에 가장 더운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기후변화로 더운 곳이 더 더워지며 끔찍한 사고가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전조에 불과했다.

옐로스톤, 기록적 물폭탄

3백 개가 넘는 간헐천이 뜨거운 수증기와 지열을 뿜어내고 회색 곰과 늑대 같은 야생동물의 천국으로 알려진 미국 최대 규모의 국립공원 옐로 스톤은 로키산맥에서 뻗어 나오는 9천 제곱킬로미터 광대한 자연숲이 끝없이 펼쳐진 세계 최초의 국립 공원이기도 하다. 우리도 버킷리스트 중 하나로 이곳을 올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으며 내 지인 중에는 가족 여행으로 어릴 적 가본 옐로 스톤의 경험을 떠올리며 야생 동물학자가 된 젊은 영재도 있다.

그런 이곳에 지난 10일부터 13일까지 폭우가 내렸다. 그냥 비가 아니었다. atmospheric river.(대기의 강?) 마치 하늘 위에서 강이 흐르는 것처럼 따뜻하고 습한 수증기가 길고 좁은 구간으로 이동하다가 어느 한 지점에서 비나 눈의 형태로 집중적으로 쏟아내는, 주로 하와이 같은 열대지방에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이 로키산맥 근처 옐로 스톤에 나타났다.

기후변화는 진작에 나타나고 있었다. 옐로 스톤 상류 유역의 온도는 1950년과 비교해 1.1도 올랐고 비가 올 확률도 20% 증가했다. 옐로스톤 공원 내 5개 주요 하천 유량도 최대 80% 늘었다. 여기에 최근 미국 중서부를 덮은 거대 열 돔(heat dome)의 가장자리가 옐로 스톤까지 뻗치며 찬 공기와 더운 공기가 부딪치며 물 폭탄을 뿌린 것이다. 230mm의 따뜻한 비가 따뜻한 밤 기온과 결합되며 산 정상 부근에 쌓여있던 눈을 한꺼번에 녹였다. 눈 녹은 물이 하류로 쏟아지면서 역사적인 규모의 홍수가 났다.

"이것은 1천 년에 한번 날까 말까 한 재앙입니다."

현지 언론에 보도된 국립공원 관리자의 말이다. 미국 지질조사국의 수문학자인 캐더린 체이스(Katherine Chase)는 지난 100년간 수집된 하천 유량 조사 결과를 토대로 이렇게 평했다.

"두 개의 하천 최대 흐름 유량은 500년에 한 번보다 더 드문 수준입니다."

옐로 스톤 화산활동을 관찰하고 있는 지구 물리학자인 마이크 폴란드는 6월 11일부터 6월 15일까지 4일 동안 게이지를 통해 흐른 물의 양은 700억 갤런 이상이며 이는 10만 개 이상의 올림픽 수영장을 가득 채울 양이라고 말했다. 만일 축구장의 모든 공간에 벽을 세워 물을 담는다면, 그 벽의 높이는 약 4.8km 높이가 될 거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기록적인 물 폭탄이 쏟아진 거다.

하천 범람으로 지형이 바뀌고 산사태로 수 백 채의 고지대 집들과 교량, 도로가 파괴됐다. 여름 관광 시즌을 맞아 옐로 스톤을 찾은 1만여 방문객은 긴급 대피했고 공원 출입은 34년 만에 전면 통제됐다. 지구온난화의 또 다른 이름은 물 폭탄과 홍수, 산사태였다.

Idaho capital sun

남프랑스, 폭염과 잔인한 돌풍

스페인과 맞닿은 프랑스 서남부 해안의 비아리츠(Biarritz). 동남부 해안의 니스, 칸느와 함께 프랑스 3대 휴양지로 불린다. 유럽의 왕족과 귀족들의 휴양지로 유명하고 프랑스 최초의 해수욕장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곳의 토요일(6월 18일) 낮 기온이 오후 1시경 40도를 넘어서더니 오후 4시경 42.9도를 기록했다. 관측 사상 최고 기록이었다. 그런데 4시를 넘어서면서 온도가 급격히 떨어졌다. 오후 5시경 23도. 한두 시간 만에 기온이 20도 가깝게 떨어진 것이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75km/h의 속도로 부는 돌풍이 해변을 뒤집어놨다. 해변에 설치된 간이 오두막들이 뒤집힐 정도였다.

그렇게 비아리츠가 뒤집히고 나서 몇 시간이 지난 뒤 밤 8시 반, 프랑스 노르망디 해안 일대에 강력한 폭풍이 몰아쳤다. 갑자기 80~100km/h의 돌풍이 몰아치고 있던 해변에는 토요일 밤을 즐기던 사람들이 있었다. 식당의 유럽풍 창문에 부딪혀 여러 명이 다치고 카이트 서핑(전용 카이트를 사용해 보드를 탄 상태에서 수상을 활주하는 수상 스포츠)을 즐기던 서퍼 한 명이 사망했다. 프랑스 언론은 '잔인한 돌풍'이라고 쓰고 있다.

지금까지도 파리를 비롯해 프랑스 국토의 2/3 가량이 40도에 육박하는 이른 폭염에 시달리고 있다. 프랑스 기상청인 메테오 프랑스의 기후학자 마니퇴 소렐은 "이번 폭염은 1974년 이후 프랑스에서 기록된 가장 이른 폭염"이라고 말했다. 파리 근교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농민들은 "응달에서는 40도이고 햇볕 아래에서는 50도"라며 농작물과 가축 보호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Meteo-Paris

스페인, 괴물 산불

40도를 웃도는 스페인 북서부와 포르투갈 북동부에서는 크고 작은 산불이 시작됐다. 특히 포르투갈과의 접경지대에 위치한 사모라(Zamora) 지역에서는 일요일(19일)까지 최소 2만 5천 헥타르 (7천5백만 평)의 산이 불탔다. 지난 수십 년간 스페인에서 일어난 산불 중 최대 규모로 기록된다. 지역 신문(El Correo de Zamora)은 이렇게 썼다.

"금세기 이 지역의 가장 큰 재난"

스페인 전역이 기록적인 폭염으로 바싹 말라있는 상황에서 마른 뇌우(비가 오지 않는 가운데 천둥 번개가 치는 현상)로 인한 번개가 점화 원인으로 알려졌다. 사모라 산불과 사투를 벌이던 스페인의 소방관 한 명은 트위터에 이렇게 썼다.

"괴물"

정리하면 이렇다. 지구 온난화는 더운 곳을 더 덥게 하고, 안 더운 곳에 기록적인 폭우와 홍수 피해를 가져오며, 찜통더위 속에 강한 돌풍을 몰고 왔으며 산불로 이어진다. 그러나 영화 <투모로우>와 달리 지금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이 끔찍한 현실을 그다지 공포로 와닿지 않는다. 지구 종말로 이어지던 영화와는 다르게 현실은 늘 언제 그랬냐는 듯 잠깐의 재난 뒤 평화로운 일상으로의 복귀로 이어져왔기 때문이다. 옐로 스톤도 그렇다.

다시 옐로스톤, 6월 22일,

폐쇄되었던 공원 출입구의 3/5이 다시 열렸다. 훼손된 공원 북부 지역에 대한 복구작업은 몇 년에 걸쳐 이어질 전망이지만, 피해가 크지 않은 지역의 출입구는 다시 열린 것이다. 그러고는 옐로 스톤으로 들어가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던 수 천대의 관광객 차량이 쏟아져 들어갔다. 오리건 주 지역신문은 한 게이트에서 수 마일에 걸쳐 길게 늘어선 긴 줄에서 몇 시간에 걸쳐 약 2,000-3,000대의 차량이 공원에 진입한 후 빠르게 붐볐다고 썼다. 마이애미에서 왔다는 엄마와 딸은 지난주에 옐로 스톤에 왔지만 대피령 이후 집에 가지 않고 계속 기다려왔다며 이런 말을 했다.

"이번 여행은 엄마와 나에게 일생에 한 번뿐인 여행이기에 엄마가 이곳을 볼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옐로스톤을 오가는 관광객은 연간 최소 490만 명으로 추산된다. 많은 수가 여름 관광객들이다. 때문에 수마가 할퀴고 간 옐로 스톤의 상처는 치유까지 몇 년이 걸리겠지만, 당장 내일부터라도 평화로운 일상으로 되돌아간 듯 비칠 것이다. 어쩌면 옐로 스톤의 지금 모습을 담아두기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긴 날씨인 기후의 변화는 끔찍한 재난의 빈도와 규모를 점점 더 빠른 속도로 키워가고 있으며, 어느 시점을 넘으면 도저히 일상으로의 복귀가 힘들 만큼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할 것이다. 그 임계점을 10년 뒤로 잡는 사람도 있고 30년 뒤, 50년 뒤, 80년 뒤로 잡는 사람들도 있지만, 확실한 것은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우리는 재난 영화의 주인공으로 이미 살아가고 있으며, 그 결말이 해피엔딩이 될지 아닐지는 우리 하기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