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어준과 조선일보가 동시에 주목한 기후이슈

EU 택소노미 집중탐구

2022. 6. 26.

김어준과 조선일보가 동시에 주목한 기후이슈 'EU 택소노미'

[42호] EU 택소노미 논란, 7분 브리핑입니다.

오늘의 기후

원자력은 녹색에너지일까? EU 택소노미 총정리

내일의 리더님께,

저는 요즘 유럽연합(EU) 의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택소노미 논란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지난 금요일, 늘 저에게 의미 깊은 좌표를 찍어주시는 구독자 서 선생님께서 '<뉴스공장>에서 이 내용을 들었는데 흥미롭다'면서 추천해 주시더군요.

검색을 시작하자마자 재미난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뉴스공장>에는 에너지 전환 시민단체 대표께서 출연하셔서 '재생에너지의 미래와 관련해 매우 중요한 논란인데 국내에는 잘 소개되지 않았다'라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런데 <조선일보>에서도 역시 이 유럽에서의 논란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더군요. 즉, 원전을 옹호하는 쪽이나 재생에너지 전환 운동을 펼치는 쪽이나 둘 다 매우 중요한 사안으로 'EU 택소노미'를 숨죽여 지켜보고 있던 겁니다.

과연 'EU 택소노미'는 뭘까요? 어떤 논란이 펼쳐지고 있고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은 뭘까요? 그동안 제가 찾은 이야기들을 약 7분에 걸쳐 보고드리겠습니다.

EU 택소노미 = 돈의 흐름

유럽연합 의회에서 만든 '녹색 경제 분류 체계'라는 뜻입니다. 택소노미(Taxonomy)는 분류체계라는 말인데 그냥 분류체계가 아니라 탄소 중립을 위해 필요한 '지속 가능 경제 활동'에 대한 분류 체계라고 하여 그린 택소노미(Green Taxonomy)라고 하죠. 좀 더 와닿는 설명을 며칠 전에 들었는데 이렇습니다. 저의 선배님 중 투자회사에서 오랫동안 근무해오시다가 요즘에는 기후 대응 관련 공익단체에서 일하고 계신 분이 계신데요,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요즘 대기업들 중에는 돈이 차고 넘치는데 요즘 대세인 ESG(환경사회투명경영 혹은 사회가치경영)에 투자하고 싶어도 어디에 어떻게 투자를 해야 할지 몰라서 답답해하는 기업들이 많더라. 그렇다고 홍보 분야에만 돈을 쓰다 보면 녹색 위장 기업(그린와싱)이라고 욕먹고... 그래서 우리가 요즘 하는 일이 바로 택소노미 작업이야. 기업들이 어디에 어떻게 투자를 해야 정말 기후 위기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지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정리하는..."

아하, 저는 그 말씀을 들으면서 '택소노미'에 대해 확실히 감을 잡을 수 있었죠. 그린 택소노미는 탄소중립 지속 가능한 경제활동이 뭔지 정의를 내리고 많고 많은 녹색 산업 중 어떤 산업 분야가 친환경인지 분류해 이쪽으로 더 많은 돈 줄이 투입되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투자의 물길' 역할이라고나 할까요. 투자자에게는 정확하고 의미 있는 정보를, 투자 받을 녹색기업이나 단체에게는 지속 가능한 돈 줄을... 이렇게 중요한 '택소노미' 이기에 당연히 여기 들어가려고 산업마다 열심히 로비도 펼치고 제안도 하겠죠? 누가 분류하는가, 즉 누가 칼자루를 쥐고 있을까?

택소노미의 칼자루는 현재 유럽연합(EU)이 쥐고 있습니다. 누가 봐도 재생에너지 보급률(전체 에너지의 약 40% 수준)이나 관련 정책 면에서 가장 앞서가는 데다 '택소노미'라는 개념을 세계에서 가장 처음 도입한 것도 유럽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2020년 6월 유럽의회는 세계 최초로 '그린 택소노미' 관련 법안을 만들 내놓고 현재 의회 의결 과정을 거쳐 오는 2023년 1월 최종안을 확정하는 수순으로 가고 있습니다. 원래는 다른 모든 분야처럼 미국이 칼자루를 쥐어야 하건만 우리의 트럼프 형님께서 파리 기후 협약을 탈퇴하시는 등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거침없이 후진 기어를 밟아오셨기에 스스로 주도권을 유럽에 헌납하셨고, 떠오르는 중국에 칼자루를 쥐여주자니 그렇고... 그래서 유럽의 택소노미는 현재 전 세계 각 나라마다 만들어질 '택소노미'의 기준이 되는 황금 표준(Gold Standard)이 되고 있습니다. 유럽의 결정으로 1조 유로, 우리 돈 약 1333조 원 규모의 기후변화 대응 투자 예산이 좌우된다고 합니다. 여기에 유럽의 분류체계가 각국의 택소노미에 영향을 준다고 할 때 (한국의 K 택소노미, 일본의 택소노미 등) 일단 유럽에서 빠진 산업은 미래 투자 받을 동력을 잃어버린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셈이죠.

왜 원자력을 넣다 뺐을까?

그런 유로 택소노미가 내년(2023년) 1월 최종안 확정을 목표로 유럽연합 의회에서 열심히 새로 고침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화두는 원자력입니다. 이걸 택소노미에 넣을까 말까를 두고 유럽 의회 내에서도 찬반이 치열하게 엇갈립니다.

선빵은 원자력과 가스 진영이 먼저 날렸습니다. 올해 2월 유럽연합 집행부는 택소노미에 '원전과 액화천연가스(LNG)'를 포함시킨다는 안을 내놓았습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대통령과 장관이 있는 행정부가 택소노미에 원전을 포함시킵시다라는 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국회의원들의 표결을 기다리는 셈입니다.

유럽연합 집행부는 왜 이런 결정을 내렸을까요? 공개적인 이유로는 '과도기적 성격'입니다. 가스와 원자력이 지속 가능한 에너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당분간 전기값과 가스값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도 빠르게 재생에너지로 넘어가려면 석유나 석탄보다는 탄소 배출을 덜하면서도 안정적인 이들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원자력과 LNG는) 아직 기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실현 가능한 저탄소 대안으로 대체할 수 없지만, 기후 변화 완화에 기여하고 EU 기후 목표 및 약속에 따라 재생 가능 투자에 집중하지 않으면서 엄격한 조건에 따라 기후 중립 경제로 전환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유럽연합 집행부)

그러나 이면의 원인이 있다고 기후전문기자인 JTBC 박상욱 기자는 지적합니다. 유럽연합의 최강국인 독일과 프랑스의 이해관계가 있었다는 후문이었죠. 독일은 탈 원전을 선언하며 재생에너지를 비약적으로 확충시켜왔지만 자국 에너지 공급의 27%를 점하고 있는 액화천연가스(LNG)를 그린 택소노미에 슬쩍 밀고 싶었다는, 또 다른 강국인 프랑스는 유럽에서도 소문난 원전 강국으로 원전을 그린 택소노미에 슬쩍 밀었다는, 이러다 보니 유럽 의회 집행부는 형님 좋고 누이 좋은 식으로 원전과 가스를 둘 다 집어넣었다는...

그러나 집행부의 안도 따지고 보면 눈 가리고 아웅식입니다. 말로만 원전과 가스를 집어넣었지, 실질적으로는 충족요건이 너무 높아서 아무도 이 기준을 맞추지 못해 투자를 받지 못할 확률이 높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이를테면 이런 식입니다.

원자력 : 반드시 포괄적인 원자력 안전 및 폐기물 관리 요건을 충족시켜야 함, 모든 관련 규제 및 최고의 기술 수준을 따르는 가운데 유럽위원회(EC)가 감독하며, 폐기물 처리와 자금 조달, 향후 폐로 계획에서 추가적이고 더 강력해진 요구 사항을 준수해야 함.

액화 천연가스 : 반드시 특정 배출 기준을 충족시켜야 하며, 있는 석탄 에너지를 재생 에너지로 전환 시키지 못할 경우에만 쓰며, 특정 배출량 목표를 달성해야 하며, 2035년까지 완벽하게 모든 발전원을 저탄소나 재생에너지로 바꿔야 함.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기준을 조건으로 제시한 거죠. 신규 원전 건설에 있어 필수 조건인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확보만 해도 그렇습니다. 전 세계에서 이걸 갖춘 나라는 핀란드와 스웨덴뿐, 수만 년 넘도록 땅속에서 완전무결하게 방사성 폐기물을 봉인하는 문제는 결코 쉽지 않을뿐더러 지역 주민들과의 합의를 이루는 것도 어려움. 프랑스조차 80년대부터 이걸 지으려고 아등바등했지만 지금도 완공까지 10년도 더 남았다는...

그러나 속 사정이야 어떻든 '원전은 친환경이다. 유럽도 인정했다'라는 논리가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올해 2월 이후 쏟아진 국내 언론 보도를 보셔도 유로 택소노미가 어떻게 활용되는지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넉 달이 지난 6월 15일,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집행부 안에 대해 의회 상임위원회가 비토를 놓은 겁니다. 유럽의회 안에 있는 두 개의 상임위였습니다. 경제통화 위원회와 환경 보건식품안전 위원회는 합동 회의를 열고 원전과 천연가스를 택소노미에 포함해선 안 된다는 결의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찬성 76표, 반대 62표, 기권 4표, 아슬아슬한 간발의 차이였죠.

이유는, 원전과 가스가 장점 많은 건 알겠는데 지속가능한 녹색기술은 아니라는 원칙적인 입장으로 돌아선 겁니다.

"유럽 의회 의원들(MEP, Member of the European Parliament)은 원자력과 가스의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 역할을 인정한다. 그러나 택소노미 법안 3조에 명시된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경제 활동으로서의 기준'을 충족시키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유럽연합 의회 보도자료, 2022년 6월 14일)

이 결의안은 상임 위원회 결의안으로, 최종 법안으로 확정되려면 오는 7월 4일부터 7일까지로 예정된 본 회의를 통과해야 합니다. 당연히 본회의 결정을 앞두고 원자력 진영과 반대 진영 사이의 치열한 로비와 여론 조성 작업이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세계 원자력 협회(WNA) 회장은 결의안 통과 직후 이런 말을 했습니다.

"유럽의회가 다음 달 본 회의에서 실용적 행보를 보이기 바란다. 원자력이 택소노미에서 배제되는 경우 유럽인들은 더 비싼 에너지 요금을 내야 된다"

뒷이야기....우크라이나와 푸틴을 고려한 결정?

한편 그린피스 쪽 자료를 보면 이번 유럽연합 상임위원회가 원자력과 가스를 배제하는 쪽으로 돌아선 배경에 우크라이나 전쟁이 작용했다는 흥미로운 해석이 나옵니다. 가뜩이나 가스 값이 폭등해 유럽 전체가 고통받고 있는데 EU 택소노미에 원자력과 가스를 포함시킨다면 그건 푸틴에게 최고의 투자 선물이 될 거라는 논리가 제대로 먹혔다는 겁니다.

"위원회 표결은 우크라이나의 최고 라다 의원인 Inna Sovsun과 우크라이나 환경 단체가 EU 분류 체계에 가스와 원자력 에너지를 추가하는 것이 푸틴 대통령에게 "선물"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나온 것이다. 투표가 시작되기 전에 그린피스의 EU 자원봉사자들은 브뤼셀의 유럽 의회 건물 밖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가스회사 대표, 가스 및 원전 로비스트 등을 러시아 인형으로 묘사한 소품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그린피스 보도자료, 2022년 6월 14일)

실제로 지난 5월 그린피스 프랑스 지부는 EU 택소노미에 원자력과 가스가 포함될 경우 러시아의 천연가스 및 원자력 회사들이 그 덕분에 수십억 달러의 추가 이익을 벌어들일 것이며, 이러한 이익 창출을 위해 이들 에너지 회사의 로비스트들이 EU의회 의원들과 고위 관료들을 18번 이상 만나왔다는 자료를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GreenPeace France

우리나라에는?

한국형 그린 택소노미인 K-택소노미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문재인 정부는 K-택소노미에 재생에너지와 함께 액화천연가스(LNG)를 넣었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여기에 원자력을 포함시키려 합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탄소 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원전을 적극 활용하는 방향으로 전환됐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8월까지 원전이 친환경 산업으로 분류되도록 K택소노미를 개정하겠다고 밝혔었다. 이에 따라 환경부는 4월부터 원전업계 및 전문가들과 긴밀하게 협의하면서 수정안을 준비 중이다." (조선일보, 2022년 6월 16일)

정부가 원자력을 포함시키려는 강력한 논리로 '유럽연합도 그랬다'라는 논리가 작용했습니다. 그런데 이 논리가 뒤집힌 것입니다. 아직 본 회의가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유럽에서도 그리고 지구 반대편 한국에서도 'EU 택소노미'가 어떻게 결정될지 숨죽여 지켜보는 이들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우리가 주목해야 할 숫자 하나만...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비율은 신에너지까지 합치더라도 OECD 국가 중 꼴찌 수준이라는 사실입니다.

"한국의 신재생에너지는 꼴찌 수준입니다. 이웃 일본은 18%로 우리의 3배이고, 미국 17%, 프랑스 20%입니다. 영국, 독일, 이탈리아는 벌써 40%에 육박하고, 캐나다는 3분의 2가 신재생에너지입니다. 반면 한국은 2018년 6.2%, 2019년 6.5%, 2020년 6.6%로 거의 늘지 않았습니다." (MBC, 2021년 7월 21일)

보수든 진보든 너무 뒤처진 재생 에너지 활성화를 위해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할 때입니다.

재생에너지 비율 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