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를 뚫고 배달하는 분들에게 기후변화는? 내일의 리더님께,
본격적인 장마철입니다.
어제 후드득 무섭게 쏟아지는 빗줄기를 보면서, 만일 입장을 바꿔 제가 배달노동자라면 참 살 떨리겠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여기 치킨 한 마디 갖다주세요' '도시락 10세트요' 전화는 폭주하는데 밖에 나가면 죽음의 공포가 엄습하고...어쩌면 농민들 이상으로 기후변화에 민감한 분들이 택배나 배달업 종사자들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2021년) 배달업 종사자 수는 42만 8천 명, 전년 대비 9.7%가 늘었습니다. 우리나라 경제인구 100명 중 1명꼴로 음식 배달·택배 배송 등에 종사하는 셈입니다. 기후와 배달이라는 검색어를 넣고 이야기를 찾아봤습니다. 현황부터 과제까지 5분 브리핑 들어갑니다.
1. 폭우 "이 비에 배달을 시켜? 야만적인.."
지난 2020년 7월 23일 밤 부산, 시간당 80mm가 넘는 폭우가 쏟아져 도심 곳곳이 침수되고 인명피해까지 발생한 상황에서도 음식 배달 오토바이들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배달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인 '라이더유니온' 계정에는 제보 영상이 올라왔는데 폭우 속에서 강처럼 변한 도로를 배달 오토바이가 달리는 모습이었습니다. 라이더유니온은 이런 설명글을 달았습니다.
"부산에서 엄청난 폭우가 쏟아져 사망사고까지 일어났습니다. 이런 날씨에도 배달을 멈추지 않은 곳이 있는데요. 야만적인 나라입니다"
배달 노동자들은 악천후 속에 배달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저희는 '근로자'에 포함되어 있지 않아서 구체적으로 배달 중단을 요구할 수 있는 법적 조항이 없습니다." "적어도 강수량 얼마 이상, 호우주의보 발령 이런 기준을 세워서 강제적으로 운행을 중단하는 기준을 만들어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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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태풍, "다리를 건널 수 없어 배달을 중단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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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링링이 몰아치던 지난 2019년 9월, 경기도 양평의 한 배달 대행업체가 배달 기사들의 안전을 위해 영업을 중단했습니다. 휘몰아치는 강풍과의 사투 속에 기사들의 안전이 우려되었기 때문입니다. 고심 끝에 영업을 중단한 업체 사장은 이런 문자를 고객들에게 보냈습니다.
"현시점 강상(면) 강하(면) 오더 수행이 어렵습니다. 오토바이로는 다리를 건널 수 없습니다. 바람이 잠잠해지면 재공지하겠습니다."
배달원들은 일단 시야 확보가 어렵고, 급브레이크를 밟아도 잘 미끄러지기에 사고 위험이 크다고 입을 모읍니다. 그러나 배달 건수에 따라 돈을 받는 구조이기에 개별적으로 영업을 중단하기도 힘든 상황, 양평의 배달업체처럼 사장의 선의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에, 배달 노동자들은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악천후로 영업을 갑자기 중단하더라도 생계 위협을 덜 받을 수 있는 제도 등...
"선의를 제공하지 않는 업체에 소속된 라이더 같은 경우에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 부분은 제도적으로 보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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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홍수, " 배달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격차는 기후변화와 함께 악화될 것"
2021년 9월 2일 뉴욕시, 허리케인 아이다의 영향으로 지하철역과 도로가 물에 잠깁니다. 뉴욕시장은 비상사태를 선포하며 시민들에게 밖에 나가지 말 것을 경고했지만, 뉴욕의 트위터에서는 이 날씨에도 음식 배달을 하는 배달노동자들의 영상이 계속 올라왔습니다. 화가 난 시민들이 비판글을 올렸고 그중 한 명은 뉴욕시 하원 의원(민주당)인 코르테즈 의원(Alexandria Ocasio-Cortez)이었습니다.
"제발 배달 주문을 하지 말아 주세요. 뉴욕 전체가 위험한 상황입니다. 취약한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립니다. 당신에게도 위험하다면 그들에게도 위험합니다. 오늘 밤 주문하지 마세요."
한 팟캐스터는 '자본주의 종말'이라고 썼고 어느 작가(Jathan Sadowski)는 "봉사하는 사람과 봉사 받는 사람 사이의 격차는 기후변화와 함께 더 악화될 것"이라고 썼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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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한파 폭설 "폭설에 배달은 살인이다"
2021년 1월 6일, 갑작스러운 폭설 등 한파 영향으로 강추위가 이어지면서 도로 곳곳이 얼어붙고 눈길 교통사고와 미끄러짐 사고가 이어졌습니다. 경기 지역 눈길 교통사고와 보행자 미끄러짐 사고로 10명 경상, 인천도 미끄러짐과 차량 추돌 사고 10건 발생. 이런 가운데 6일 저녁 배달기사 노동조합인 '라이더유니온'은 배달을 중단하라는 내용의 긴급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현재 곳곳에서 배달원들이 넘어지고 있다" "경사가 가파른 언덕에 오른 라이더들은 고립됐다. 지금 배달 일을 시키는 것은 살인과 다름없다"
지난 2018년 '라이더유니온'이 라이더 5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 '폭우나 폭설 시에도 배달했다'라고 답한 라이더들은 30.9%(17명)에 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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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폭우 뚫고 배달하다 몸살 걸렸는데...
2020년 7월의 법률방송뉴스, 법률상담을 받기 위해 이런 사례가 올라왔습니다.
"저는 중국음식점 배달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기록적인 폭우가 내리던 날에도 계속 배달이 들어오더라고요. 저희 동네도 그날 오토바이 운행이 힘들 만큼 침수 피해를 입어서 폭우를 뚫고 걸어가야 했어요. 그런데 업소 주인이 저보고 배달하라며 등을 떠미는 겁니다. 비를 맞으며 일을 한 탓에 현재 지독한 몸살이 왔는데요. 악천후에 저희 배달원을 보호할 수 있는 규제는 없는 건가요?"
이에 대해 법조인들은 노동부의 '권고'사항이 있지만 말 그대로 권고여서 안타깝다고 말합니다.
"2017년 고용노동부는 배달 종사자에 대한 안전보호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하절기에 장마전선 집중호우를 꼽았고 배달대행 기사들은 날씨를 실시간으로 확인해서 운행 시 주의사항 위험요인 감속 기준 등을 안내해야 하며 필요시 배달 운행을 제한해야 합니다. 그리고 폭우 폭설 야간 운전 등 계절적 환경적 요인에 따라서 배달 지역 거리에 대한 제한을 둘 것을 권고하고 있는데요. 예를 들어 폭우 등으로 가시거리가 100m 이내인 경우에는 1.5㎞ 지역 내에서만 주문을 받아야 합니다. 다만 이는 법적 규제가 아닌 단순 권고다 보니 업체가 이를 시행하지 않는 경우도 많고 이를 제재할 근거 규정 또한 없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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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배달 노동자에게 '악천후'란 매우 다양함
지난 2018년 10월에 나온 배달 노동자 취재 기사는 이들이 느끼는 우리나라의 4계절에서 만나는 악천후가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는지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봄 : 미세먼지와 황사 "마스크를 써본 사람은 알겠지만, 일을 하다 보면 호흡이 힘들어져 답답한 마음에 자꾸 벗게 되더라. 내리쬐는 봄볕에 미세먼
지까지 더해지면 정말 최악”
여름 : 장마와 태풍 “비바람 가운데 내 몸과 오토바이, 음식 모두를 신경 써야 하는 극한 상황” “빗길에 미끄러지기라도 하는 날엔 세상이 다 원망스럽다”
가을 : 방심은 금물 “가을철 낙엽으로 인해 집배원이 미끄러지거나 발을 헛디뎌 골절 및 찰과상을 입는 경우가 있다”
겨울 : 한파와 빙판길 “눈 온 뒤 빙판길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넘어진 경험이 있다. 눈은 하얗게 보이기라도 하지, 도로 위 형성된 얼음은 보이지 않아 대처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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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배달노동자가 미끄러진 자신의 모습을 찍어 올린 사진, 클리앙>
7. 배달료를 올리면 되지 않나?
실제로 극한 날씨에 배달 플랫폼들은 배달 수수료를 올리는 쪽의 해법을 제시했습니다. 21년의 폭설 직후 쿠팡 이츠의 경우 서울 강남구와 용산구, 금천구, 관악구, 동작구 등 일부 지역에서 배달원들에게 주는 건당 배달 수수료로 1만 5000원을 내걸었습니다. 평소 해당 지역의 배달 건당 수수료가 3100~4200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최대 5배가량 오른 셈, 그러나 배달노동조합은 주문 자체를 안 받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말합니다.
"많은 이들이 '프리랜서 신분인 배달기사가 돈을 많이 벌려고 폭설 때 일하는 것 아니냐'라고 하는데, 수수료가 올라도 사고가 나면 더 손해를 본다는 사실을 아는 베테랑 기사들은 폭설이 오면 그냥 집에 간다" "오히려 초보자들이 프로모션이 높게 오른 것을 보고 끝까지 배달하다가 사고로 이어지는 일이 많다"
8. 배달 주문을 거부할 수 없는 이유
보이지 않는 불이익이 있는 것 같습니다. 배달 거부 땐 평점이 낮아져 배정 대기 시간이 갈수록 길어지는 등 불이익을 감수해야 합니다. 특히 평점이 일정 수준 미치지 못하는 배달원에게는 배달 요청 메시지가 아예 가지 않는 경우...
9. 정리하면
- 기후변화가 심해지면서 폭염, 폭우, 태풍, 폭설에 미세먼지 황사까지 '배달 악천후'는 더 잦아지고 세진다.
- 주문 거부에 대한 제도적 장치 필요
- 이 경우 '배달 악천후'의 기준 정립 필요
- 악천후로 인한 배달 지연이나 배달사고 및 다양한 인명피해 물적 손실에 대한 법적 분쟁 증가 불가피
10. 택배 노동자가 낸 ‘기후 소송’…판사가 된 당신의 선택은?
폭우나 폭염 때 택배 노동자들이 근무를 중단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이러한 재난에 가까운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온실가스 배출을 최소화해달라고 정부에 요구하는 기후 소송이 벌어집니다. 실제 상황이 아니라 가상의 상황입니다. 이럴 때 판사인 당신은 어떤 선택을 내릴까? 국제 앰네스티 한국지부가 지난 2021년 7월 23일에 공개한 참여형 기후변화 인식개선 캠페인 ‘이상한 재판’ 프로그램의 한 장면입니다.
가상 법정 속에 들어가 판결을 내려보시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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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레터 예고] 남중국/인도/방글라데시를 휩쓸고 있는 최악의 홍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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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550만 명의 이재민, 중국도 최소 그만큼,
무엇이 원인이고 어떤 일이 예상될까요?
금요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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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후 뉴스레터는 2022년 3월16일 첫발송을 시작으로 매주 월,수,금 발송합니다. (단, 평일 공휴일은 쉽니다.) 구독자 여러분의 답장 한 줄, 사진 한 컷이 레터가 되고 기사가 되어 기후대응에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늘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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