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환경과 배추가 사라진 추석

청국장을 사러 농협에 갔는데 친환경매대가 텅~

2022. 9. 12.

[오늘의 기후] 친환경과 배추가 사라진 추석

[65호] 간만의 고향길 정체...고생많으셨습니다.

오늘의 기후

친환경과 배추가 사라진 추석

"채소값이 너무 올라서 장 볼 게 없는 거야"

아내의 말에 그런가보다 했습니다. 다음날 몸에 좋은 청국장을 해먹어보려고 오랜만에 농협 하나로마트에 나가봤는데, 그곳에서 낯선 풍경과 마주쳤습니다. 친환경 채소 코너에 채소가 없는겁니다. 텅~비어있었습니다,

일반 농산물도 전반적으로 휑한 모습, 아무리 올해 추석이 이르다고는 해도 오곡백과가 산처럼 쌓여있던 예년 추석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풍경이었습니다. 즉석 김치 코너에는 아예 이런 문구가 걸려있었습니다. '장마로 인한 절임배추 공급부족과 물량소진으로 금일 즉석김치 판매가 종료되었습니다.' 추석 다음날인 2022년 9월11일 일요일 오전 11시30분의 풍경이었습니다.

"집중호우로 쓸려가고 인건비 상승에 농사지을 엄두를 못내요"

친환경 농산물의 실종은 충격이었습니다. 생각해봤죠. 어쩌면 추석 대목이 지난 다음날 일시적인 물량빠짐일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경기도 친환경농업인 연합회 홍안나 실장께 전화를 걸어 여쭤봤더니, 친환경 농산물의 실종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현장 상황이 그래요. 경기도의 경우 태풍 오기 전에도 8월 집중호우 때 가장 큰 생산지였던 양평이 큰 타격을 입었고, 코로나 상황부터 인력난이 심각했어요. 친환경은 일반 농업보다 비료, 농약 덜 쓰고 사람 손이 많이 가는데 인력 구하기도 힘들고 인건비도 상승하니까 농사를 아예 덜 짓는거죠."

코로나19 이후 외국인 노동자들의 출입국이 엄격히 제한되면서 농촌에는 인력부족이 현실로 다가왔는데 친환경 농업에게는 직격탄이었던 겁니다. 게다가 강남을 물바다로 만들었던 8월 폭우 등 수상한 기후까지...문제는 정부 정책입니다. 홍 실장은 갈수록 어려워지는 농촌 현장에 대한 생산 지원책이 없을 뿐 아니라 특히 친환경에 대한 맞춤형 정책도 부재해 농민들은 생산 의욕을 잃고 있다고 말합니다.

"농사짓기는 갈수록 어려워지는데 생산 지원 정책은 없고, 조금만 오르면 제까닥 수입하고, 더구나 재해보험도 친환경에 대한 항목이 아예 없어요. 사람 손이 훨씬 많이 필요한 분야가 친환경인데 일반 농산물과 같이 취급되는 제도적 문제도..."

말씀을 들으며 생각해봤습니다. 친환경 농사를 짓지 말라는 거구나, 그렇다면 앞으로 그 일은 누가 하지? 뉴질랜드나 호주 농민이? 아니면 내가?....

애호박 하나에 6천9백원이 된 이유

추석 이틀 전, SNS와 맘카페에는 이런 글들이 올라왔습니다. "애호박 1개 6900원, 물가 무슨 일?" "도라지 작은 팩 하나에 5000원 정도" "몇 가지만 집어도 5만원을 훌쩍 넘는다"

애호박은 추석 명절상 전 부치는 데 올라갈 뿐 아니라 평상시에도 찌개나 부침에 많이 활용되는 스테디셀러 농산물입니다. 그런 애호박이 추석을 앞두고 5천원을 훌쩍 넘겼습니다. 최근에는 개당 2655원 수준으로 내려갔지만, 이는 한 달 전(1503원)과 비교해 76.6% 오른 가격이고 1년 전에 비해서도 39.3% 오른 수준, 도대체 애호박에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요? 한 달 전 기사를 찾아봤습니다. 글을 쓰고 있는 오늘로부터 정확히 한 달 전인 8월12일, <연합뉴스>는 '진흙 뒤집어쓴 애호박 모종…추석 출하 불가능' 이라는 르뽀기사를 보도했습니다.

"정씨는 귀농 12년 차 농부다. 오랜 시행착오 끝에 애호박 재배 기술을 배워 한창 농사 재미를 부치던 터였다. 그러나 지난 8일 이후 나흘간 이어진 폭우는 풍년 농사를 꿈꾸던 그의 희망을 일순간 엉망으로 만들었다. 이 기간 청주에는 370㎜의 비가 내렸다. 이로 인해 옥산면 일대 농경지 4.4㏊가량이 물에 잠겼다. 비 피해를 본 그의 애호박도 추석 대목을 겨냥해 지난 6일 옮겨 심은 모종이다. 정씨는 "10년 넘는 농촌 생활에서 이런 물난리를 처음 겪는다"며 "애호박 모종은 죄다 죽었고, 진흙을 뒤집어쓴 비닐멀칭도 걷어내야 할 판"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모종을 심으면 한 달 지나야 수확을 하는데, 땅이 물을 먹은 상태에서는 모종을 다시 심어도 살아남지 못한다"며 "올 추석 농사는 포기해야 할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연합뉴스, 2022년 8월12일)

추석 대목을 앞두고 심어놨던 애호박 모종들이 폭우로 엉망이 되어 출하가 불가능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처럼 8월 집중호우에 최근 대형 태풍까지 한반도를 지나면서 노지 채소와 과일 물가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9월7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8월) 농축산수산물의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7.0%였는데 이 가운데 채소류 가격 상승 폭이 27.9%였습니다. 구체적으로 호박 83.2%, 배추 78.0%, 오이 69.2%, 무 56.1%, 열무 54.3%, 파 48.9%, 가지 46.4%, 미나리 39.4% 등....과일류는 태풍 힌남노 이후 낙과 피해까지 겹쳤습니다.

기온 상승으로 금값이 된 고랭지 배추...그러나 농민도 적자다.

고랭지 배추와 무가 금값이 됐습니다. 9월5일 농산물유통정보(KAMIS) 기준 고랭지 배추 가격은 포기당 7464원, 무 한 개 가격은 3253원으로 평년에 비해 약 28.2% 올랐고 가격 폭락이던 지난해(4796원)와 비교해서는 약 50% 오른 수준...

그런데 이상한 게 있습니다. 배추 값이 오르면 소비자는 울상이지만 농민은 살림살이가 조금 나아져야 하지 않나요. 그런데 농민도 울상입니다. 생산비도 못 건졌다며 합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계속되는 이상기후로 수확량이 평소보다 50%가량 떨어진 겁니다. <한국농어민신문>의 지난 8월30일 르뽀기사...

“올해 작황은 역대 최악입니다. 정상 출하한 배추밭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에요. 고랭지 지역인 태백이 6월 기온이 35도까지 올라간 날이 며칠 있었어요. 이례적인 일이죠. 그때부터 배추가 망가지기 시작했어요.” (태백농협 마케팅팀장)

농사는 망하는데 비료값, 운송비 등 생산단가는 계속 오르다보니 배추값이 금값이 되어도 농민도 울상, 소비자도 울상이 된 겁니다.

"운임비는 1대당 60만원에서 올해 75만원으로 늘었고, 인건비도 작년보다 30% 이상 올랐어요. 토지·장비 임대료, 비료·농약대 등도 모두 올라 4만평에 들어간 생산비가 3억5천만원 정도 되는데, 생산량 감소 등으로 1억5천만원만 건졌습니다. 농사를 지어 오히려 손해가 생기고 있어요. 날씨로 망가지는 물량은 어쩔 수 없다고 쳐도 치솟는 생산비까지 농가가 다 감당하라는 것인지, 이러면서 ‘금배추’라고 하는데, 도대체 농사를 지으란 것인지 말라는 것인지 답답합니다.”
(태백 매봉산 67세 배추농민 노성상씨, 한국농어민신문 기사)

언제까지 날씨 탓만?...정책과 언론이 바뀌어야

고랭지 배추의 가격상승은 올해 초부터 예견되어 왔지만 정부는 무대응으로 일관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습니다. 올해 1월 발표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농업전망에서 고랭지배추 생산량은 지난해보다 8.5%, 평년보다 9.3% 각각 감소할 것이란 관측이 있었습니다. 재배면적 자체가 계속 줄어드는 현실을 감안한 관측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정부의 생산 지원책은 미미했고 날씨마저 이상고온으로 생산량이 더 줄면서 이런 결과가 나타났기에 현장에서는 “예견된 참사였지만 대책은 없었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정부가 물가안정을 위해 대형마트에 몇백억원씩 할인쿠폰 예산을 지원하는데, 농민들에게는 어떤 지원을 해주고 있는지 묻고 싶다."

"경제부총리가 고랭지배추밭에 와서 배추를 들고 사진을 찍고, 대형마트는 ‘반값배추’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생산 지원 대책은 보이지 않고 그때그때 가격관리만 하고 있으니 농민들의 허탈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 산지 사정을 모르거나 아니면 무시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

“언론에서 ‘금배추’라고 얘기하는데, 그러면 금배추를 판 농부들은 부자가 됐는가. 금배추의 생산원가가 얼마인지 알고나 있는지 궁금하다”

“물가주범으로 배추가 자주 언급되고 있는데, 결국 정부가 나서서 지속적인 생산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의 경제현황과 기후 불안정성을 감안할 때 밥상물가의 고공행진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소비자도 농민도 모두 피해자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밥상의 위기를 극복하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열어갈 수 있을까요? 발상의 전환과 과감한 실천이 필요합니다. 저도 언론 밥을 먹는 입장에서 금배추, 금파 등 농산물 가격 보도의 관행을 어떤 식으로 개선하면 좋을지 연구해봐야겠습니다.